생후 3개월부터 사회생활 시작하는 벨기에 아이들

2020. 9. 8. 04:11벨기에 육아

 유럽 하면 높은 복지 수준과 여유로운 삶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시아하면 일 많이 하고 최첨단인 게 먼저 떠오르고요. 괜히 그래요. ㅎㅎ 벨기에는 어떨까요?

 유럽에선 왠지 출산 및 육아휴직도 길고 아이를 부담 없이 잘 키울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을 많이 해줄 것 같지 않나요?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보다는 벨기에가 아이를 키우기에 더 부담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 한국에서 육아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는 내 동생을 볼 때면 안쓰러울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동생은 아들 하나, 저는 무려 세 자녀인데도 말이죠. ㅎㅎ 가끔 한국이었으면 셋이나 못 낳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한국에도 다자녀 육아하시는 분들 계시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여기 서던 거기 서던 장단점은 있겠지만요.

 벨기에는 출산휴가가 얼마나 되는가? 벨기에 정부 사이트를 후다닥 찾아보겠습니다.
Vous avez droit à un congé de maternité de 15 semaines. En cas de naissances multiples, le congé de maternité est en principe de 17 semaines mais il peut se prolonger jusqu'à 19 semaines.... Le congé prénatal doit être pris entre 6 semaines et 7 jours avant la date prévue de votre accouchement.
당신은 15주의 출산휴가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다태아의 경우, 출산휴가는 17주가 기본이지만 19주까지 연장이 가능합니다.... 산전휴가는 출산 예정일 6주~7일 전에 떠나야 합니다.

 한마디로 출산 후 3개월정도 있는 거죠. 흠흠,,, 이렇게 말하니 좀 야박하게 보이기는 하네요. 저도 첨엔 정말 벨기에 시스템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일단 여기서 말하는 15주의 출산휴가는 100% 유급 휴가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원하는 경우에는 휴가를 더 가질 수 있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휴가 중 급여가 조금씩 차등되는 거죠. 사실 3개월이라고 해도 정말 꼬물이고 아직 혼자서 잘 앉지도 못할 때인데, 반면에 눈만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어주고 제일 예쁠 나이인데, 아이를 놓고 복직하려면 발이 잘 안 떨어지기는 하죠.

 

 그럼 엄마가 복직하면 아기는 누가 돌보느냐. 아이들은 crèche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프랑스어로 요람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크래쉬는 만 0-3세의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탁아소의 개념인데요, 유치원은 Ecole maternelle, 즉 학교로 쳐서 무료교육인 반면 크래쉬는 보육기관으로 무상은 아닙니다. 대신 시에서 운영하는 크래쉬에 등원을 하는 경우에는 부모의 수입에 따라 크래쉬 비용이 차등 청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경쟁이 엄청 치열해서 출산 전부터 대기를 걸어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을 못하긴 합니다. 그래서 보통 사설 크래쉬를 이용하는데 기저귀와 간식 및 식사비가 다 포함되긴 한 거지만 어림잡아 월 800유로 정도는 든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2살 반을 손꼽아 기다리죠. ㅎㅎ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벌써 보육기관에 다니면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어쩌나,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을 하나... 아이들 엄청 잘 지냅니다. 3개월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낯가림도 없고요. ㅎㅎ 집에서 하루 종일 엄마랑만 있는 것보다 크래쉬에서 나름 규칙에 맞춰 생활하는 습관도 들이고요, 또래 친구들도 사귑니다. 유치원에서 제일 어린 반 아이들 보면 크래쉬 다닌 아이들과 안 다닌 아이들이 많이 차이가 나요. 크래쉬 다닌 아이들은 유치원에도 빛의 속도로 적응하고, 선생님도 더 잘 따르고, 심지어는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도 주도합니다. 크래쉬 안 다닌 아이들은 더 순하고 크래쉬 다닌 아이들은 더 독립적인 성향이 생기더라고요.

 

 어느 쪽이던 물론 장단점은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걸 선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걸 쉽게 선택할 수 있고, 아무도 거기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3개월부터 아이를 크래쉬에 보내고 복직하는 엄마도 있고, 유치원 때까지,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도 있고. 엄마랑 아이가 행복하다면 둘 다 이상하지 않은 거거든요. 출산 후에 몸 회복하는데 3개월 가지고는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몸 회복에는 육아보다 복직이 더 좋은 것 같아요. ㅎㅎ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만 보면서 집에 있는 거, 쉬운 거 아니거든요. 물론 일도 쉽지 않지만 여긴 한국보다 칼퇴 문화가 아주 바람직하게 자리 잡혀있어서, 그리고 반일제 근무도 아주 일반적이라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것보다 직장에 나가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일도 하고 무엇보다 월급도 받고... 이걸 많은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겨놓고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하려 한다고 회사 눈치, 집에서는 늦게 들어온다고 집 눈치 보는 내 동생이 가옆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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