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아이들의 치열한 과외활동

2020. 9. 6. 05:30벨기에 육아

 유럽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을까. '한국 아이들은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공부량도 너무 많다.' 혹은 '유럽 아이들의 교육 진도는 너무 느린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유럽 아이들도 나름 사교육으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면 믿으시겠어요? 실제로 초등학생 아이들의 책가방도 너무 무거워서 안쓰러울 때가 많고요, 방과 후에도 바쁘게 뛰어다니는 일이 다반사지요. 우리 첫째는 저녁시간 되면 자긴 너무 피곤하다면서 소파에 기대앉아 투덜 거기리도 해요. 아침엔 또 신나서 학교에 가지만요.

 

 저는 나름 한국 교육과정을 무난하게 거쳐온 케이스인데요, 20대 후반을 프랑스에서 보내면서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엄청나게 많아요. 외국 친구들이랑 이야기해보면 역사, 지리, 사회 지식 및 상식이 너무 부족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또 프랑스 친구들은 왜 술자리에서 정치, 역사, 사회 이야기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우리나라처럼 평범하게 책 얘기, 음악 얘기하고 그럼 이런 고민 덜했을 텐데요. 그 시절에 나에게 자주 자괴감을 안겨주던 친구 중 하나인 지금의 남편은 얼마 전에 또 지금 한국이 몇 공화국이냐는 질문을 던져서 절 당황하게 했죠. 이런 거 저만 모르는 건가요? 아무튼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거 열심히 따라갔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유럽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자꾸 작아지는 거냐고요. 이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막 시작했는데요, 이제 초등학교라고 매일매일 숙제도 하나씩 가져옵니다. 이번 금요일 숙제는 알파벳 a를 필기체로 세줄 써오는 거였어요. 그것도 힘들다고 주말 내내 이틀에 걸쳐서 해갈 건가 봐요. 오늘 두줄 쓰고 일요일인 내일 한 줄 더 쓰겠다네요. 벨기에 아이들 유치원땐 정말 치열하게 놀기만 하거든요. ㅎㅎ 노는 것도 배우는 거지만... 이젠 자긴 놀 시간도 없다고 투덜투덜거립니다. 이제 시작인데 숙제는 점점 많아지겠죠. 한국에 있는 아직 유치원생인 우리 조카는 벌써 한글 읽고, 쓰고, 구구단까지 다 외우던데... 여기선 초등학교 들어가서 연필잡는거 배우고, 알파벳 쓰기 연습하고. ㅎㅎ 벨기에에 많은 학교가 방과 후 활동에 숙제 교실이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수업 끝나고 엄마가 늦게 찾으러 오는 경우에 데이케어에서 그저 놀면 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숙제량이 꽤나 되기 때문에 숙제 교실에서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 책가방도 얼마나 무거운지 우리 집 아이들도 아닌데도 죄다 들어주고 싶고요.

 

 이렇게 학교 공부만 따라간다고 다가 아니죠. 우리 집 아이들도 그렇고 아이들 친구들도 보면 다양한 과외활동으로 방과 후에도 늘 스케줄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 아이들은 주 1회 테니스 수업, 음악수업이 있고요, 지난 학년엔 학교에서 진행하는 요리교실도 했었네요. 올해는 수영도 하고 싶다는데,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수업도 적고 클라스당 인원수도 적어서 시간이 맞는 수업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고요. 보통 운동 한 가지, 음악이나 그림 등 예술 한두 가지씩은 하는 것 같아요. 그 외에 물론 영어나 연극, 심지어는 서커스까지 하는 친구도 있네요. 많이 선택하는 운동은 축구, 테니스, 승마, 필드하키 등이 있고요. 벨기에 아이들은 공부만큼 예술, 체육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초등시절에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나 찾아서 중고등 시절까지 쭉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교육도 마찬가지이고요.

 

 벨기에 아이들은 진로를 꽤나 일찌감치 정해야 하는데요, 중학교 진학 때부터 벌써 일반 대학에 갈지, 의학이나 법학 같은 전문적인 대학에 갈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을지를 대략적으로 결정해서 학교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하고 나서 바꾸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너무 중요하죠. 그래서 초등학교 때 공부를 더 많이 시키게 되기도 하고요. 어려서부터 뭐가 하고싶은지 더 일찍, 더 자주 고민해봐야합니다. 고학년 반에는 과목에 따라서 우열반이 있는 경우도 흔해요. 중학교 진학 때 이미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니.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성적에 맞춰서 학교 정하고, 학과 정하고... 이렇게 얘기하니 한심하네요. ㅠ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원하는 학교에 원하는 과에 자유롭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대학 가는 것보다 중학교 가는 게 더 어렵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유럽 아이들이 또 안쓰러워 보이지만 이곳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입니다. 숙제 교실도 있지만 그래도 한주에 한번 이상은 축구교실에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요, 학교 일과 중간중간에도 반강제로(?)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시간도 있고요. 공부도 많이 시키지만 공부와 운동, 예술활동의 밸런스를 맞춰주려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다 각자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한국사람들 너무 다 똑똑하고 교육도 많이 받고 그런 건 좋지만 여기 와서 느끼는 건 다양성은 확실히 적은 것 같아요. 가야 하는 길이 대부분 같은 거죠. 거기에 비하면 여기서는 아이들에게도 상당히 다양한 선택이 요구되는데요, 넘어지고 일어나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많이 생기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더 개인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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