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5. 22:01ㆍ카테고리 없음

이사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임시거주기간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아파트도 아니고 우리 집을 사서 들어왔는데 남이 쓰던 그대로 쓰는 게 맘에 걸린다는 로만이 벽이며 바닥을 손보고 싶어 해서 가구를 못 넣고 있는 까닭입니다. 뭐 그것도 그렇긴 한데 나는 또 다른 사람이 쓰던 건 별로 상관없고 일단 보기 깔끔하고 내가 쓸고 닦으며 쓰면 또 내 것이 된다 생각하는 입장이라 생각이 잘 맞지 않습니다. 집수리 하다가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던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렇게 취향과 생각이 달랐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집은 집이고 생활은 해야지요. 방으로 입주를 못하고있는 우리 가족은 캠핑하는 것처럼 거실에 매트리스를 다닥다닥 깔고 다 함께 잠을 잡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너무 좋아하더니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지라 이것도 일상이 되니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브뤼셀 아파트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인데 왜 이사를 해야 하냐며 울먹이는 아이들 때문에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착잡하기도 몇 차례, 이제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해갑니다. 며칠 동안 정원에 있는 딸기를 박멸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비 한번 오고 해 한번 나면 어김없이 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딸기는 절대로 집에서 재배하지 않고 마트에서 사 먹는 걸로 식구들에게 못을 박습니다. 어제는 잔디 씨앗을 여기저기 잔뜩 뿌려놨는데 그 때문인지 오늘따라 정원에 예쁜 새들의 방문이 잦네요. 잔디 씨앗 먹으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새소리가 너무 예뻐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원에 있는 새집에 모이 좀 채워둬야겠어요. ㅎㅎ
다음 주까지 방학인지라 막내의 생일파티를 월요일에 하기로 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내 친구들이랑요. ㅎㅎ 생일파티 구실로 저도 이렇게 친구들이랑 좀 시간을 보내봅니다. 월요일에 줄 구디백을 만들고 저녁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몇 해를 거른 핼러윈 쿠키를 구워야겠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조금씩의 수고가 다 나중에 누군가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대신 올해는 무리하지 않고 한가지만 굽습니다. 몇 가지 굽고 싶은 욕심은 '방에 입주도 못하는 처지에 하는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며 꾹꾹 눌러봅니다.
지난주 브뤼셀 중학교 수업때 한 학생이 아파트가 뭐냐고 수줍게 물어봅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왔나 했더니 로제가 브루노마스와 아파트라는 신곡을 냈더군요. 우리 집 아이들도 한번 들려줬더니 하루종일 흥얼거리면서 다니던데 점점 의외의 곳에서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늘 말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엔 어디 가도 한국친구들끼리는 하고 싶은 말 눈치 보지 않고 다 했는데 이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니깐요. 다들 해외에 나갈 일도 한국에서도 외국인을 마주할 일도 많아졌는데 어디서든 고운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