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벨기에 학교의 자세
유럽지역은 아시아지역보다는 늦게 코로나 사태의 여파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선 코로나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고 보통 코비드라고 부르는 게 일상화되었지만요. 2월경부터 슬슬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오더니 결국은 3월 중순부터 락다운이 시작되었는데 그에 따라 학교들도 일단 수업을 중단하고, 의료 관련 업종 부모들이나 집에서 케어가 불가능한 자녀를 위한 데이케어만 운영하는 등 대처를 시작했습니다. 데이케어를 조금씩 운영하고 인원수를 조금씩 늘리면서 학교들 나름대로 일종의 알파테스트를 시도한 것 같았는데요, 격리기간 동안 학교가 데이케어를 운영하면서 내놓은 대책은 이렇습니다.
- 학부모는 절대 교내 출입금지이며 모든 아이들은 출입구에서 무조건 손을 소독제로 세정합니다.
- 12세 미만 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습니다. 교사들과 교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은 필수입니다.
- 아이들을 5명에서 최대 10명씩 그룹으로 만듭니다.
- 이걸 버블이라고 부르고 이 버블은 다른 버블과 절대 섞이지 않게 합니다. 운동장에서도 마주치지 않도록 운동장 사용시간을 나눠서 사용합니다.
- 형제나 자매는 무조건 같은 버블에 속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락다운 초반에는 집에서만 지내고 테라스에서만 놀다가 여름방학 전 마지막 2주 정도만 학교 데이케어에 나갔는데 둘째 아이가 하루 종일 학교에서 형이랑 같은 그룹 안에서 놀았던 게 좋았는지 9월 새 학기 시작하면서도 형이랑 같은 반이냐고 몇 번을 물어보기도 했더랬죠. 6월 막바지에 날씨 정말 너무 더웠는데 학교에서 더운 날씨에도 마스크 쓰고서 아이들 돌봐주시던 선생님들, 교직원분들, 교장선생님까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벨기에에서는 락다운 기간 동안 학교에서 근무하신 모든 선생님들과 교직원분들이 강제성 없이 본인이 자원해서 학교에 나와주신 거기 때문에 더욱더 진심으로 감사했고요. 다른 공립 학교들은 막바지에 수업을 재개했었는데요, 우리 아이들 학교는 수업은 마지막까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데이케어 신청은 전교생 대상으로 받았구요. 벨기에 학교들이 수업을 재개할 때는 혹시 모를 가정에서의 방치와 학대에 더 취약한 유치부 어린아이들부터 수업을 열었구요. 강시 정책이 나왔을때는 정말 수업이 필요한건 큰아이들인데 왜 이렇게 진행하나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나니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9월 현재에도 팬데믹은 어느 정도 안정은 되었지만 이제 말도 안 되는 공포가 줄어들고 다들 이제 일상에서 받아들인 단계이지 어제도 추가 확진자수는 194명이나 됩니다. (벨기에 확진자 집계 시스템이 다른 나라와 달라서 통계가 훨씬 더 많이 잡힌다고 하는데 어쨌든 집계된 확진자수는 200명 가까이 되네요.) 한국처럼 훅 줄어서 이제 없어지나 보다 하는 기대감을 맛 본건 아니지만 그냥 꾸준히 조금씩 줄었다가 조금 늘었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쉽게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 코로나 사태에도 벨기에의 학교들은 9월 1일 정상 등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수업까지 정상적으로 다 진행하였고요. 이런 저러한 변경사항들 때문에 등하교 시간에 학교 앞이 붐볐지만 첫날인 어제보다 어쨌든 오늘은 훨씬 나아진 것 같았어요. 변경사항이라 함은 학부모들 학교 출입 금지, 아이들 등하교 시 교문에서 손 세정 + 수시로 손 세정, 학년별로 하교시간을 조금씩 다르게 조정했고요, 급식운영이 취소되어 무조건 도시락, 간식을 챙겨가야 하고요 (그 와중에 벨기에는 법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굶는걸 그냥 둘 수 없게 해 두어서 만약에 식사나 간식 못 챙겨 오는 아이들은 크래커나 과자 조각이라도 뭘 줄 거예요.), 수영이나 아키도 수업, 학부모회의, 학년별로 진행하던 수학여행과 학교 행사들은 잠정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걸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쉽지만 학교에 정상 등교할 수 있는 것만도 너무 감사한 때이지요.
6월에 학년이 끝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종업식도 제대로 못하고, 학교에서 가지는 모임이 다 금지되어 큰 아이반은 선생님과 바깥에서 잠깐 만나 선물 증정 + 기념촬영만 하고, 작은 아이반은 엄마들은 선생님이랑 인사도 못하고 아이들만 1시간 정도 선생님과 9월 새 학년에서 만날 선생님과 인사하는 시간만 잠깐 가졌네요. 방학도 너무 긴 방학이었어서 둘째는 학교 안 가고 싶다고 하더니 어제 첫날 다녀오고서는 가기 싫다는 얘기가 쏙 들어갔어요. 어찌나 신나 하는지 아이들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게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지내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3월에 락다운이 시작되고서도 벨기에 학교들은 수업은 취소했을망정 학교를 닫지는 않았습니다. 강제로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못 오게도 안 한 거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한국보다 느슨한 벨기에 정책에 얼마나 걱정이 크셨는지 모릅니다. 요새도 한국에 있는 조카는 유치원에 못 가고 집에만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나도 여기 사람 다 되었는지 이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꾸준히 지속 가능한 만큼의 생활 방역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3월 말에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던 의사 부부 친구도 이제 완치되어 아이들 손잡고 등하교시키고 약사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마스크를 하던 위생장갑을 끼던 다 좋은데 못 나가고 집에만 있는 게 건강에 제일 안 좋다면서 집에서 격리하는 거 자긴 너무 반대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결국 좋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걸 얼마나 따라주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